8월3일 (프라하 - 1 : 프라하 성)
체코 가이드는 굉장히 프로근성이 강한 분이셨다.
그 복잡한 프라하 시내와, 프라하 성을 어찌그리 잘 빠져 다니면서 열심히 설명을 하던지.
프라하의 가이드는 어느나라 가이드라 할 것 없이 이동용 마이크를 달고 다닌다.
관광지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지 고성능 마이크가 아니면 설명을 들을 수 조차 없을 것 같다.
프라하의 관광은 프라하 성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프라하의 상징인 프라하 성은 비투스대성당, 궁전과 정원의 3군데로 크게 구분되어 진다고 한다. 현재는 대통령 관저도 이 곳에 있다고한다.
이동하는데 곳곳이 도로공사이다. 전에는 그냥 지냈는 데 관광수입이 많아져서 최근에는 공사가 없는 날이 없단다.
궁전에 들어 가는 길은 보리수가 가로수로 되어 있었는 데 보리수가 체코의 꽃이란다. 카톨릭국가에 석가가 해탈한 보리수라니......
프라하 성은 동,서,남,북으로 근위병이 서있는데 1시간 마다 교대를 한다. 주변에 그 많은 사람 들이 있는 데 정 자세를 유지하고 그림처럼 서 있다.
비투스 성당은 세계 각국 사람 들이 모여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각 나라의 가이드가 관광객 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각 국의 언어가 흘러 나온다.
성당 안에는 총 21개의 예배당이 있었다.
모든 성당의 제단은 동쪽에 있는 데 하나님의 말씀이 동쪽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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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창문은 여러 성화 들이 스테인드글라스로 그려져 있었다.
그림 내용을 가이드가 하나라도 놓힐새라 빠짐없이 열심히 설명한다.
예수님의 처음 기적인 가나의 기적, 성경말씀(나는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니...),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원죄를 예수님으로부터 속죄 받는 것, 창세기 1 장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준비해 놓고 사람을 만드신 것) 등등....
여러개의 벽화도 있었는 데 그 중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받는 모습도 있었다.
이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도 역시 웅장했다. 1740년에 설치되었다고한다.
왕비의 고해성사를 끝까지 왕에게 알리지 않아 카를교에서 혀를 자르고 강에 던져져 순교를 하고 강으로 떠내려가는 네포묵신부님을 건져서 (1736년)안치한 무덤이 있었는데 모두 은으로 되어있었다. 이 곳은 건축가, 왕, 대 주교 등 많은 사람 들의 무덤이 있었다.
체코왕의 3사람이 무덤이있는 카타콤베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루드빌라 왕이 체코에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분이라 루드빌라왕의 예배당은 모두 금으로 되어 있었다.
남쪽에는 정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카를 4세가 비투스 성당으로 기도하러 가던 연결통로가 있었다.
카를 4세의 신앙심을 엿 볼 수 있었다.
대통령 관저도 이 곳에 있었다.
정문으로 이동 도중 최초의 성당인 성모마리아성당이 있었다.
1960년 공사중 우연히 발견 되었다고 하는 데 기초석만이 남아 있었다.
프라하 성 앞은 넓은광장이 있었다.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은 귀족의 집,
박물관, 대사관, 체코 최초의 마사리크대통령 동상, 도서관, 흑사병 사망자를 기리는 흑사탑, 로코코양식의 대주교궁전(모짜르트 영화가 대부분 이곳에서 촬영 되었다고한다.) 등이 있었다.
체코에서는 르네상스양식과 바로크양식, 로코코양식, 고딕양식의 건축물이 함께 붙어 있으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래서 건축가 들과 미술가 들에게 아름다운 도시로 찬사 받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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