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 성소피아성당
터어키 여행기 2탄
2005년 7월30일
(이스탄블에서앙카라 ★ 성소피아성당)
터어키 여행 첫 날
호텔식 아침 뷔페라고는 하지만 터어키식 바게트 빵, 오이 토마토, 커피, 쥬스, 이상한 치즈, 그리고 까만 열매 (이름을 끝까지 몰랐다.) ... 휴··우.
아껴야 하는 컵라면과 고추장에 오이 찍어 먹는 것으로 아침을 마무리.
그래도 커피믹스를 많이 가져갔기 때문에 모닝 커피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아침에 화제거리는 참 많았다.
밤사이에 지진이 있었단다. 그것도 강도 6이 넘는. 침대가 좌우로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는데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혼수 상태였다.
새벽에는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무슬림들이 하루에 5번기도하는 시간이란다.
이스탄블투어를 시작으로 터어키의 긴 여행이 시작 되었다.
그리스정교와 이슬람교가 공존 한다는 성소피아 성당과 브루모스크가 있는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공원을 사이에 두고 공존하는 아야소피아와 블루모스크가 인상적이었다. 이슬람과 성당 두 종교를 대표하는 어마어마한 건축물이 한곳에 마주보고 있다는게 신기하여 두 건물을 번갈아 가며 한참을 보았다.
비잔틴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명에 의하여 지어진 건축의 걸작이라는 아야소피아는 블루모스크를 마주보고 있는 붉고 오랜된 느낌의 건물이었다. 비잔틴 시대에는 성당으로 오스만시대에는 회교사원으로 사용되었던 곳이란다.
오스만제국의 술탄메흐멧2세가 비자틴제국을 함락시키고 가장먼저 한 일이 아야소피아에서 이슬람식 예배를 올렸다고 한다. 이날로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다시 태어났고 술탄메흐멧2세는 천년묵은 이 기독교 대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네개의 첨탑과 미흐랍을 추가하고 성당 벽에 새겨진 모자이크 성화 위에 회벽을 칠해 덮은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스 정교의 본산이었던 아야 소피아는 이후 5백년 간 이슬람사원으로 이용됐단다. 이슬람 사원으로 이용되기 위해 회벽칠을 당할 때 솔로몬에게 당신보다 더 위대한 성전을 지었다고 감격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살아 있었다면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공항처럼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들어간 아야소피아는 이슬람사원으로 5백년동안이나 이용됐다고는 하지만 천장에 붙은 초대형 원반들에 적힌 금빛 코란문자와 곳곳의 아랍어같은 문자외에는 성당이란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 원반에 쓰인 코란문자의 의미는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다"란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러 벽화 중 “디시스”라는 명칭이 붙은 벽화는 반쯤 회벽칠을 벗겨 놓았는데 좌측엔 성모마리아, 우측엔 세례요한이 서있는 데 예수님의 눈동자가 내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닌가? 측은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눈동자가 한참 마음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