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여행2탄(2016. 8. 8)-고린도, 고린도운하
아테네 도착 후
아테네 관광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아테네 역시 집회로 혼잡하여
곧바로 고린도로 향한다.
사도바울이 전도 여행을 했던 고린도는
에베소와 힘께 새로운 감흥을 주는 곳이다.
뜨거운 햇살도 고린도를향한 우리를 막지 못한다.
1시간 넘게 이동하다보니 고린도운하가 보인다.
고린도 운하는 세계 3대 운하 (파나마, 수에즈, 고린도)중 하나로 두번째로 개통된 운하란다.
동쪽의 에게해와 서쪽의 이오니아 해를 연결하는 운하이다.
네로황제가 유대인을 포함한 죄수 및 노예들 6,000여명을 동원해서
공사를 하다가 중단되어 완성은
1893년에 프랑스에 의해 완공되었다.
운하가 완공되기 전에는 배를 땅위로 올려 옮겼다고한다.
(출처 네이버백과사전)
하긴 위험을 간수하고 지중해를 돌아가느니
배를 뭍에서 옮기는 수고가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코린토스’라는 지명으로도 불리우는 코린트는
고대로부터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그리스 남북육상교통의 요충지며,
이오니아해(海)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로 크게 번영한 도시였다고한다.
그렇기에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지였지 않았을 까 싶다.
일단 다리위에서 보고 난 후 고린도 유적지를 먼저 보고
오후에 유람선을 타고 고린도운하를 직접 보기로한다.
식당가는 길도
호젓하니 좋다.
이곳에서는 그리스전통식 수불라끼를 먹는데 음료로 오렌지 쥬스 원액이 나온다.
식전 등장하는 빵과 샐러드.....
일단 식사 후 고린도 유적지로 향한다.
식당을 조금 벗어나면 고린도 유적지와
시시포스 신화가 있는 시시포스산이 보인다.
시시포스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는
산꼭대기로 바위를 올리고 나면 다시 굴러떨어지고
다시 떨어진 돌을 산꼭대기로 올리는 신들의 형벌을 받고 있는 중이다.
힘들게 돌을 굴러 올렸으나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굴러 떨어지는
그래서 평생 돌을 다시 굴려 올라가야하는 시시포스의 형벌.
그래서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시시포스 컴플랙스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바로 그 산이다.
고린도 유적지가 보이니 급한 마음이 들어 사진에 담는다.
시시포스산이 저 멀리 보이고,
어렴풋이 꼭대기에 있는 유적지도 보인다.
우리는 패스...
이제 고린도 유적지 입성이다.
입구에 있는
물저장 창고.
그리스는 물이 귀해서 물에 관한 신화가 많이 있단다.
석회암지대이기에 강이 별로 없어 물이 귀하단다.
물저장창고에는
코린토스에 얽힌 신화 가운데
가장 슬픈 이야기인 글라우케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곳을 글라우케 샘이라한다.
아르고스 원정대의 대장 이아손은
적국의 공주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황금의 양털을 얻어 메데이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에서
메데이아가 벌인 잔혹한 복수 행위로
고향에서 쫓겨나 코린토스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아손의 인물에 반한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은
자신의 딸 글라우케를 이아손과 결혼시키기로 결심한다.
남동생까지 죽이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이아손만을 쫓아 그리스까지 온 메데이아에게
이아손의 이런 행위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배신이었다.
더 이상 이아손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음을 안 메데이아는
글라우케에게
독이 묻은 옷을 결혼 선물이라고 보낸다.
이 옷을 입은 글라우케는 온몸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고통스런 글라우케는
이곳에서 하늘의 신들에게 무릎을 꿇고
차라리 자신을 샘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고통 받는 소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신들은
그녀를 푸른 물이 솟는 샘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 샘이 바로 글라우케 샘이다.
‘글라우케’는 그리스 말로 푸른 물빛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박물관 야외에는
이렇게 고린도 유적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목이 잘린 조각상이 많이 전시되어있다.
로마시대 조각상 중에는
자연적으로 목이 잘려나간 것도 있지만
인공적으로 목을 파낸 조각상이 많이 있었다.
이 조각상들은 가문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가문을 빛낸 인물을 조각상으로 만들어 광장에 세워 놓았 던 것이었다.
이슬람이 쳐들어 왔을 때
이슬람족에게는 이 조각상들이 잡신으로 여겨져서 철저하게 파괴 했다고 한다,.
그 중 시간이 없을 때에는 목만 잘라 버리거나
더 시간이 없을 때에는 코만 자르기도 했단다.
이는 성경에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기 때문이란다.
인공적으로 판 것은
몸을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가문에 영광을 세운 인물의 얼굴만 조각하여
만들어 놓았다가 붙여놓고
이사를 갈 경우
목만 갖고가서
이사간 장소에서 다시 몸통위에 붙여 놓았다고 한다.
이곳은 대리석이 너무 흔해서...ㅎㅎ
돌이 너무 흔해서 사형 법 중에도 돌 던져 죽이기가 있었단다.
몸은 치마입은 여자인데
얼굴은 수염이 더부룩한 남자의 상이다.
자기 목을 잘라 들고 있는 것 같지만
목은 떨어져 나간 것이고 들고 있는 것은 마스크란다.
이 것은 연극배우인 여자가
자기 배역인 남자의 마스크를 들고 있는 것이란다.
옛날에는 밤에 조명 밑에서 연극을 하다보니
마스크가 이렇게 강렬할 수 밖에 없었단다.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인 옥타비아누스상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손자들이 양옆에 있는데
이들은 옷을 안입고있다.
옷을 벗었거나 신발을 벗은 조각상은
영웅이나 신을 의미한단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손자들은 영웅을 만들고 자기는
제1 신일 뿐이라고 했지만
자신도 70세 가까이 살면서 신이되고 싶어했었다.
(당시 그리스인의 평균 수면은 40~50세였다)
장수하였지만 자기의 늙은 모습은
조각하지 못하고 젊었을 때의 모습만 남기도록했었단다.
그 유명한 네로황제의 두상이다.
자기를 왕으로 만들려고
양아버지인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하고 왕위에 앉힌
자신의 엄마를 정치적 간섭을 심하게 한다고 독살하고
부인까지 죽인 천륜을 어긴 네로가 있었다.
왕위에 오른 초기에는 고린도 운하 건설을 계획하고
정치에도 몰두했지만 기독교를 박해하여
사도 베드로와 사도바울을 모두 죽이고
로마를 불태운
나쁜 왕으로 기억되고있다.
환상적인 모자이크도 등장한다.
도자기 수출로도 부를 축적했음 을 알 수 있는
항아리, 술병, 화병, 물병 등도 전시되어있다.
멋진 두 청년 상이 있는데 이들은 노예들이란다.
노예와 귀족의 차이는 발을 보면 알 수있는데
귀족은 샌들을 신고있고
(더워서 무좀 걸릴까봐 그랬단다.)
노예들은 일을 열심히 해야해서 가죽신을 신겼다고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고린도양식을
제대로 보았다.
그리고 코린트 양식이라하는 것이 고린도 양식임도 알게되었다 ㅠㅠ
코린트식의 화려한 장식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코린트식양식의 문향은 아칸서스 잎에서 왔단다.
샌달신은 귀족의 발도 있다. ㅎㅎ
고린도가 향락의 도시임을 입증하듯
성기모양의 와인잔도 있었다.
부자들의 석관도 보인다.
손에 부엉이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의 지혜의 여신 아데나이다.
아스끌리삐오스 신전 터에서 발굴된 조각 파편들(환자들이 신전에서 나음을 받고 신께 감사의 표시로 환부들을 받들어 봉납한 것들) 등이 있다.
옛 시장 터로 사용되던 아고라를 보며
설명을 듣는다.
현재 아고라라 함은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토론을 하며 민주주의가 싹이 텄기 때문이란다.
아고라광장은 민주주의 광장이라 이해하면 된단다.
가로세로 50미터와 90미터의 시장 골목을 만들어 사용되었다.
이미 2500년전부터 대리석을 깔고 그 밑에 상하수도시설까지 완벽하게 해 놓았단다.
2500년전이라면 우리나라의 고조선시대란다.
이미 수세식화장실도 있었던 로마시대.
멀리 도리아식의 아폴론신전이 보인다.
함께보이는 월계수나무를 가르키며
올리브관과 월계수관을 설명한다.
지금 올림픽 마라톤에서 승리하면 승리의 월계관을 쓴다고 하는데
사실은 올리브관이란다.
올림픽우승자는 무조건 올리브관을 썼단다.
월계관은 시인대회 우승자 ,문학대회우승자,
델피에서 열린 피티안경기 (지금의 올림픽이 2년마다 열리는 것 단
올림픽은 순수 그리스 혈통만이 참가 할 수 있었으나 피티안 경기는 국제경기였단다.)
우승자에게 씌워주었단다.
페이레네 샘이다.
이 샘은 아직도 물이 풍부하다.
이 샘에 얽힌 재미있는 신화가 있다.
코린토스는 물이 귀한 곳이다.
고린도의 초대 왕 시시포스가 이곳에 도시를 세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염려했던 문제가 바로 물이었다.
그때 마침 제우스는 코린토스 이웃에 있는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간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를 납치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소포스는 자신의 딸을 납치한 제우스의 행방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러나 납치범이 주신 제우스인지라 아무도 감히 제우스의 행방을 알려 주지 않았다.
이때 시쉬포스는 아소포스에게 코린토스에 샘을 하나 만들어 주면 범인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제의했다.
이렇게 해서 솟아나게 된 샘이 바로 페이레네 샘(시시포스샘)이다.
시쉬포스는 이렇게 하여 샘을 얻었지만 제우스에게 괘씸죄를 범해 죽은 뒤에 혹독한 형벌을 받는다.
언덕을 향해 바위를 굴리는 벌이다.
시쉬포스가 끊임없이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은 페이레네 샘에서는 아직도 지하에서부터 시원한 물이 솟아나고있단다.
아무리 돌산이라도 수맥이있어 물이 흐른다고한다.
비마(Bema)라고 팻말이 붙은 강단이다.
사도행전 사도바울이 2차전도여행 때
고린도에서 1년반이나 있었는데
그때 유대인들의 고소로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았던 자리이다.
사도행전 18장12절부터 17절에 그 기록이 있다.
갈리오가 아가야(아가야가 지금의 고린도이다.)총독이 되었을때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자리로 데려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는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말하길 만일 문제가 괴악한 행동이나부정한 행위이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만일 너희 법과 명칭에 관한거면 너희 스스로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재판장이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 저희를 재판자리에 쫓아내니 모든 사람들이 회당장 중 하나인 소스데네를 잡아 때리니 갈리오가 이를 상관치 아니하노라.
이 말씀이 나오는 사도바울이 있었던 그 연단장이다.
외지에서 온 사람이 말을 하고자 할 때 이 비마 위에 올라가서 말을 하던곳이라 사도바울도 올 때마다 이곳에서 연설을 하던 곳이란다.
고린도에 있는 이 신전은 주전 6세기경에 세워진 그리스의 신전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전통적인 도리아식 기둥이며 기둥이 하나로 된 통기둥이다. 현재는 7개의 기둥만이 서있다.
사도바울의 전도 기록이다.
월계수 열매
고린도유적을 돌아본 후
다리를 건너면서 보았던 고린도 운하를 유람선을 타고 건너본다.
운하의 폭이 워낙 좁아
일방통행이다.
건너편에서 오는 배가 들어 온 후 출발이다.
셀카에 빠진 서방님
양 옆으로 다니어마이트 흔적이 역력하다.
출발하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이젠 다리도 제법 놓여있고,
번지점프하는 곳도 보인다.
제공되는 음료를 먹으며 기분 좋게 운하를 느껴보았다.
고린도에서는 이렇게 멋진 해변가 호텔(kING SARON)에서 숙박하였다. ㅎㅎ
해변가라 바람이 너무 불어 눈을 뜰 수 가 없다.
이런 곳에서 일주일만 힐링해도 좋겠다.
다음날 아침에는 발코니에서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멋진 일출과 일몰을 보는 행운의 여행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