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차 - 오슬로에서 릴리함메르 경유 오따
노르웨이 오슬로의 첫 관광지는
오슬로 시청사다.
오슬로는 노르웨이의 수도이다.
노르웨이(Norway)는 '북쪽의 길'이란 의미이고
바다가 산으로 간 도시 오슬로(Oslo)는 '하나님의 초원'이라는 의미란다.
오슬로 시청사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장소로 유명한데,
매년 12월 10일 노벨이 서거한 날
이곳에서 노벨평화상의 시상식이 거행된단다.
다른 때는 시청사 내부를 관람 할 수 있는 데
우리가 간 날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일요일이라
상점문도 굳게 닫혀있고 ㅠㅠ
아쉬운대로
시청사 주변 벽의 조각품 몇개만 담아 보았다.
다음은 비겔란 조각공원이다.
노르웨이의 유명한 조각가
비겔란이 28년간 작품을 만들어 시에 기증한 공원이다.
비겔란은 부인이 3명 있었는데
2번째 부인이 시와 협상하여
땅을 기증 받고
비겔란의 모든 작품을 기증한 것이다.
비겔란 조각 공원은 입구부터 철학적이다.
큰문도 있지만 절대로 열리지 않고
작은 문만 열리는 데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의미란다.
ㅎㅎ 큰 문은 페인트 칠 할 때만 열린다나?
비겔란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테마로
탄생, 성장, 병, 노화, 사랑 등등을 계획적으로 조각하였다.
이 넓은 곳을
구상하여
흐트러짐 없이 예술적으로 승화 시키다니
대단한 거장임에 틀림없다.
처음엔
다리 좌, 우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표현한
청동 조각상이 있고,
그 후에 화강암으로된 조각상이 나타난다.
이 모든 작품엔 작품명이 없는 데
작품명은 보는 사람이 정하도록 하는 것이란다.
사람들이 자꾸 만져서 인지 화가 잔뜩나있다.
문 하나도 그냥 만들지 않고
작품화 시켰다.
거대한 화강암의 오벨리스크 같은 작품이 나타난다.
모놀리트(Monolith)탑인데
무게가 260 kg , 높이가 17.3m이란다.
화강암 한개에
120명의 사람이 조각되어 있다는 데
정상을 향해 안간힘을 쓰면서
서로 짓밟고 올라가는 형상이란다.
아래쪽일 수록 노인과 약자가 많단다.
인간의 삶을 나타낸 조각 들이지만
이 작품은 왠지 더욱 씁쓸함을 안겨준다.
화강암 조각군을 지나면 해시계가 나온다.
연재의 포즈가 제법 자연스러워지고있다.
해시계 조각상에는
별자리 조각이 있다.
나는 나의 천칭자리에서 한 컷.
북유럽은
도시나, 교회안에
묘지가 있는 데
화장을 한 후 가족을 함께 안장하였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민족이라
묘지의 생화를 간혹 훔치기도 한단다. ㅎㅎ
다음 이동 장소는
오슬로 국립미술관이다.
뭉크의 절규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고
노르웨이 최대의 미술관이다.
피카소, 르노아르, 세잔, 마네, 모딜리아니,
드가, 뭉크 등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일요일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아 무료로 입장하였다.
계단을 오르면 있는 비너스 상
전시관에 들어서니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맞아준다.
우리나라에도 몇번 왔었고,
서유럽투어때도 보았 던 작품인데
작품은 한개가 아니라 여러개란다.
빈센드반 고흐의 귀가 잘린 자화상도 있고
피카소의 작품도 만나고
미술책에서 외웠던 모딜리아니의 작품도 보고
역시 르노아르의 작품은 풍만함이 다르다.
세잔느 작품도 만난다.
뭉크의 절규와 마돈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도록 금지되어있었다.
노르웨이의 예술가로는 미술가 뭉크, 음악가 그리그, 극작가 입센이 있는 데 이들은 서로 작품세계에 영향을 주었단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면서 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았더라도 이런 아름다운 자연앞에서 예술의 혼이 살아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 남섬과 같은 노르웨이의 자연을 감상하면서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릴리함메르가 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데 그 추운 곳에 홀로 자연을 즐기는 이가 있다. 슬리퍼를 보아하니 남성인 듯......
릴리함메르의 스키점프대가 보인다. 저 멀리 국가대표 영화에서 보았 던
산딸기가 많은 휴게소 우리가 갔을 땐 이미 철이 지나버렸다. ㅠㅠ
해당화가 곱게 피어있다.
북유럽에 많이 심어져있 던 자일리톨 껌으로 유명한 자작나무이다.
슬슬 빙하가 만든 폭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동도중 스타브게르게(목조교회)를 보여주었다. 노르웨이에는 세계문화 유산이 7개 있는 데 1000년전에 지어진 오르네르지역에 있는 것이 문화유산이지만 그 지역은 방문하지 않으니 노르웨이 전역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약 28개 목조교회 중 하나인 이 곳을 보는 것이다. 목조는 화재와 해충에 취약한 관계로 소나무를 송진과 함께 태워 그을린 후 생선(대구)의 기름을 발라 방수처리를 한단다. 900년 가까이 목조 건물을 유지하는 노르웨이의 문화유산지킴이는 대단한 것 같았다.
이 교회에도 여지없이 묘지가 있었다. 묘비도 규격없이 자유분방하다.
릴리함메르를 지나 2시간쯤 후에 우리가 오늘 휴식 할 오따(Otta)라는 곳에 도착 하였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는 데 이곳의 지명은 슬픈 유래가 있단다. 중세 흑사병이 휩쓸었을 때 이곳 오따에서는 흑사병으로 모두 죽고 8명만이 살아남아 노르웨이어로 8을 의미하는 오따가 되었단다. 흑사병이 얼마나 무서웠 던지 12명이 살아남은 도시는 뜨레빠 (12라는 의미) 개 1마리가 생존 한 마을은 훈두룹이라 마을 이름을 지었단다. 슬픈 유래와는 다르게 맑은 계곡물도 흐르고 나즈막한 Hill도있고 비록 사진은 못찍었지만 집집마다 특색있고 개성있게 꾸민 너무 예쁘고 조용한 지역이었다. 저녁 산책을 하면서 우린 울타리에 피어있는 블루베리(정확한지는 모른다. )를 따먹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