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여행(2009)

인도 - 엘로라석굴, 뭄바이

joknolja 2009. 8. 14. 19:30

 엘로라 석굴 사원 중 

제일 먼저 방문한 곳은

힌두사원이다.

엘로라의 석굴은 1번~12번굴이 불교사원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고,( 5~7세기 경의 것) 

13번~29번굴은 힌두사원으로

7~9세기 경에 조성되었다고하며,

30번~34번까지는 자이나교사원인데

8~10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한다.

 

만들어진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가

한 장소에 공존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인도는

남의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모든 종교를

포용한다는 것이

눈으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엘로라 동굴군중 최고의 건조물은

힌두교동굴인 16번 동굴 사원이다.

 

쉬바신의 거처,

혹은 쉬바신 그 자체라고 불리우는

티벳의 산인 '카일라쉬'와

같은 이름의

카알라쉬사원으로

폭45미터, 깊이 90미터, 높이 30미터의

이 거대한 규모이다.

 

조각을 하였다 하여도

그 거대한 규모에

입이 벌어질 지경인데

 

거대한 바위산을

파고 들어가면서

만든 사원이라니.....

 

데칸고원 대부분을 통치하던

크리슈티나1세가

지은 건축물인데

 

시바가 거주하는 신을

자신의 영토로 옮기겠다는

통치자의 신앙이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사원을

만든 것이다.  와~~우!!


 

위로 부터

파 내려 가면서

작업을 하였음에도

 

이런 정교한 조각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듯하다.

 

 

 

거대한 규모에

감탄만  나올뿐

 

 

 

 

이 많은 코끼리가

모두

실물크기이다.

 

 

 

 

카쥬라호에서

본듯한 조각

 

우리나라의 다보탑  느낌이 드는 조각이다.

 

 

 

 

정확하게 서있는 석주

오벨리스크보다

더 큰 위압감을 준다.

 

바위산을 깍아

어떻게

이런 석주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종교의 힘이

정말 위대하다고 다시금 느끼게된다.

 

 

 

파괴를 담당하는 쉬바신.

그  신만이 결정 할 수 있다는 무욕

 

연약한 인간들은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과 죽음의 윤회수레바퀴를

돌아야하고,

 

죽으면 또 태어나는

 괴로운 삶의 수레를 벗어나

완전한 해탈의 경지에

도달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의 은총이고,

그 은총을 받기위해서는

철저한 헌신만이 필요하다는

신앙심이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완성 시킬 수있었 던 것이리라.

 

예술과

신앙심을 감탄함과 동시에

 

통치자들이

순수한 백성들을

종교라는 틀에 묶어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자신의

왕국을

돈독히 하려한 것이 보여진다.

 

 

 

 

앙코르왓을

축소해 옮겨 놓은 곳이다.

 

"머리조심하세요~~"라는

가이드의 음성이 들리면

이런

좁고 가파른 계단이 있다.

 

 

 

 한 곳에 몰려있는

아잔타와는 달리

 

엘로라는

불교석굴군이

이런 길을

한참 가야

나타 날 만큼

먼곳에

분포되어있다.

 

 초기 불교는

소승불교로

불상이 없이

보리수나

사리탑만이 형상화 되어있다.

 

 

 

 

기원후 1세기경

인도서북 간다라 지방이

그리이스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모습인 붓다의 상을 만들어기 시작했단다.

이때부터 인간으로서 깨달은 자를 의미했던 붓다 역시

점차 초월적인 존재로 신격화되면서

 예배와 기도의 대상이 되어

불교의 종교화가 이루어지기 시작 되었다고한다.

엘로라 불교석굴에서도

보리수나 탑과 같은 상징물의 석굴과

 인간 모습을 한 붓다의 조각품이 섞여있었다.

 

 

 

 

몇번째

석굴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곳은

돔 형식으로

커다란 사리탑만이 있었는데

 

인상 적인 것은

목소리의 공명이

멋있게

울려 퍼지는 곳이 었다.

 

엘로라의

가이드가

멋지게

경전을 읊는다 .

 

마치 천상의 소리 같이

매혹적이다.

 

 

 

.

역시 초기 석굴은

소승불교로

불상이 없다.

 

대신

수도승들이 수도 하던 곳이

그대로 남아있다.

 

 

 

자이나교 석굴로 이동 중 만난 인도여인들

현대화 된 사리를 입고 있었는 데

자기들을 찍으란다.

 

 

 

 

 

31-34번은 자이나교 석굴사원 이다.

 

자이나교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비정통 브라만교에서 발생한 출가주의 종교이다.

 불전에서 니간타(Nigantha:尼乾陀)라고 전하는 종교를,

석가와 같은 시대의 마하비라(Mahvra)가 재정비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최고의 완성자를 지나(Jina)라 부르고,

그 가르침이라 하여 지나교 또는 자이나교라는 호칭이 생겼단다.

불타에서 연유하여 '불교'라는 호칭이 생긴 것과 같은 이치이리라.

 

자이나교 쪽으로 이동하면

영락없이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 던

나신의 부처상이 나타난다.

 

채색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자이나교

석굴 앞에

멋진

주목이 서있다.

 

 끝없이 펼쳐지는

데칸고원

 

현지 식

겉을 싸고있는 것은

살짝 구워

고소 했는 데

13일 째

인도식을

접하다보니

별로 땡기지 않는다.

 

 뭄바이의 타지마할호텔

 

 

테러가 났던

타지마할호텔

 

인도와 네팔 여행 내내보았던

타타화물차, 자동차를 운영하는

 

타타그룹의 창엽주가

영국에서

유색인종이라 투숙을 거절 당한 후

자존심으로 세운 최고의 호텔이다.

 

화장실만 사용 했는데 ㅎㅎ

손을 씻을 때

옆에서

물도 틀어주고,

수건도 주고

완전 VIP대접이다.

 

팁을 주어야하나

고민하다

그냥 나왔는데

계속 뒤가 땡겼다.

인도문과 통하는 아라비아해

영국인들이 세우고

영국이 철수 할 떄는 이문 을 통해

영국으로 돌아갔단다. 

 

인도인들은 종교때문인지

점령 당했던

영국에 대해

나쁜 감정이 없고

단지 자기네가

힘이 없었으니

식민지가 되었 던 것이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영국에 대한

나쁜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이 신기했다.

 

아라비아해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본

바다이다.